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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용

鄭順用

1878. 2. 11 ~ 1927.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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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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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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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영덕군 지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78년 2월 1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북장로교 신도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은 곧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경북 영덕지역은 3월 중순경에 이르러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북장로교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가던 중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그는 중도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과 만나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운동의 배경과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고 영덕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안하였고 권태원이 이를 수락하였다. 김세영과 권태원은 영덕 각지의 기독교인들과 연락을 취하여 만세시위 계획을 공유하였다. 3월 19일 원정동 장날 시장에서 발생한 만세시위는 대체로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였다. 주명우(朱明宇)는 북장로교 원전동(院前洞)교회 집사였고 김중명(金重命)은 북장로교파의 영수(領袖)였으며, 김주일(金周日)·박기동(朴基東)·김석이(金錫伊)는 모두 기독교 신도였다. 원정동 시위 주도자들은 3월 중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던 만세운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 시위의 주도자인 주명우는 3월 10일경부터 『매일신보(每日申報)』를 통하여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으며, 김중명은 15일경에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명우 등은 각 지역에서의 만세운동이 장날에 일어났음을 예의주시하고 3월 19일 원정동 장날에 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고 한국 독립을 희망하여 주명우 등과 함께 원정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일 시위 현장에서는 “한국 독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죽기를 결심하고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이 행해졌고 사람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알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독립을 희망하여’ 주명우 등과 함께 원정동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러한 만세시위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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