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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선

丁淳宣

1897. 4. 29 ~ 197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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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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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무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7년 4월 29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외읍면(外邑面, 현 무안읍) 성동리(城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전남 무안에도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3월 20일 전남 무안군 외읍면 장날에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외읍면 만세운동은 지역 유지인 정순홍(丁淳紅)과 김순기(金順淇)가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외읍면 일대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켜야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시작되었다. 김순기 등은 10여 명의 동지를 모아, 3월 19일 밤 외읍면에 위치한 김순기의 집에 모여, 3월 20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경고문 수십 여 장을 작성하였다. 이후 3월 20일 새벽, 경고문을 외읍면 각지에 붙인 다음, 오전 11시 외읍면 남산(南山)에 집결하였다. 이때 소식을 듣고 사람들과 함께 남산에서부터 시작, 읍내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읍내로 내려오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으며, 이들은 그대로 무안보통학교로 향해,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무안경찰관주재소 경찰들과 대치하였다. 이곳에서 일제 경찰들을 꾸짖는 한편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이후 무안 읍내 곳곳을 행진하였는데, 오후 2시 무렵 시위대는 이미 500여 명을 넘어섰다. 늘어나는 시위 인원에 긴장한 일제 경찰들은 증원을 요청하였다. 목포(木浦)에서 경찰 병력이 출동하여 시위를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시위대의 기세가 원체 거센 까닭에 감히 제지하지 못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밤늦게까지 만세를 외치다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부터 이루어진 일제 경찰들의 주도인물 검거로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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