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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익

鄭秀益

1867. 4. 1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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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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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갑산(甲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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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갑산 장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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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1867년 4월 16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회린면(會麟面) 후지리(厚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15일 갑산군 장평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을 비롯해서 7개 도시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갑산군 장평면 만세시위는 함경남도 내 천도교인들이 도내에서 만세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추진되었다. 3월 12일 갑산군 천도교구의 전도사 김명수(金明洙)는 정수웅(鄭秀雄)과 함께 회린면 후지리(厚地里)에 거주하는 정국태(鄭國泰) 집에서 회합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김명수·정국태·정수웅은 3월 15일에 갑산군 장평면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15일 오후 2시 정창원(鄭昌元)·조병학(趙秉學) 등과 함께 장평면 서부리의 갑산군 천도교당에 도착하였다. 정수옹의 지시를 받은 조병학은 본인이 직접 제작한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200여 명의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평면 일대를 행진하였다.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는 일제 군경의 저지선을 뚫고 갑산군청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일제 군경은 갑산군으로 급파된 혜산진 수비대와 함께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갑산군 장평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였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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