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흠
鄭成欽1878. 3. 13 ~ 1952.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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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8년 3월 1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19년 3월 안동군 길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1일 길안면(吉安面) 천지리(泉旨里) 장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장두희(張斗凞)은 여러 차례 만나 논의한 결과, 만세시위 장소는 이웃마을 길안면 천지시장, 날짜는 천지시장 장날인 3월 21일로 정하였다. 만세운동에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하였고, 이 과정에서 참여하게 되었다. 3월 21일 거사 당일 아침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장터로 향하였다. 오후 3시경에 손영학 등과 함께 천지시장 중앙에서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세우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시위대에는 350여 명의 장꾼과 주민들이 참여하였으며,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에 이르러 다 같이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면장과 면서기를 향하여 ‘독립만세’를 함께 부르자고 하면서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들이 무력으로 제지하였고 분노한 시위대는 면사무소 창문과 문을 향하여 돌을 투척하여 산산조각 내었다. 격렬한 투석전 형태의 만세시위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자정 무렵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공포를 발포하였고, 시위대는 항거하다가 결국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22일부터 경찰들은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펼쳐 이날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부터 이른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과 벌금 50원을 받고 벌금을 완납하지 못한 때에는 50일 간의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21일 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1920년 4월 28일 영친왕(英親王) 결혼 기념 특면 사면으로 경성감옥에서 출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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