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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화

程錫和

185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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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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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화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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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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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3)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파포리(巴浦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61세이므로 1859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8일 화천군 상서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화천군 상서면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7일 파포면 인근 봉오리(峰吾里) 구장 이창선(李昌善)이 마을회의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의하면서 준비되었다. 이창선은 박용구(朴容九)·김광필(金光弼)·심경지(沈敬之) 등과 함께 다음날 화천면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지역을 나누어 주민들에게 동참을 권유하기로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적극적으로 파포리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동참을 권유하였다. 3월 28일 주민들을 이끌고 봉오리와 파포리 사이에 있는 산기슭으로 향하였다. 약속 장소에는 파포리 주민들을 비롯하여 봉오리와 다목리(多木里) 주민 3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참여자 모두가 모이자 주도자들은 지난밤에 제작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상서면 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미리 준비한 몽둥이와 괭이·낫을 들고 뒤를 따랐다. 시위대가 봉오리를 지나 파포리 강을 건너 상서면 사무소에 도착하였고 면사무소를 에워싸고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시위대는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서기에게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거부하자 면사무소 밖으로 끌어내고 시위대 앞에 세웠다. 또한 시위대와 함께 몽둥이와 돌 등으로 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만세’ 를 부르며 상서면으로 행진하였으며, 논미리(論味里)·신대리(新大里)·신풍리(新豊里) 마을 주민들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인원이 시위대를 이루었다. 행진하는 과정에서 헌병 보조원과 일본인 도로공사 기수를 붙잡아 앞세워 상서면으로 향하였다. 점심 무렵, 상서면에 가까운 신풍리 앞 주막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하기로 하였다. 점심식사 중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급습하여 총격을 가하였다. 시위대 중 4명이 총격으로 사망하였으며, 시위대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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