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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석

丁夢錫

1901. 6. 1 ~ 1966.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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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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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3.1운동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901년 6월 1일에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지역은 알 수 없다. 다만, 본적(本籍)은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송정면(松汀面) 도호리(道湖里)이다. 1919년 당시에는 전남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거주하며 관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군 광주 읍내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은 당시 광주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한 김철(金鐵)·최정두(崔正斗)·김복현(金福鉉) 등과 접촉하여 숭일학교 학생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3월 8일과 9일에 걸쳐 학생들을 모아 놓고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한편, 비밀리에 제작한 독립선언서 및 독립가, 태극기 등을 숭일학교 학생 대표 정두범(鄭斗凡)·김철주(金鐵柱)·김성민(金聖敏)·김판철(金判哲)·김정수(金楨洙) 등에게 전달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전파하는 한편, 만세운동 당일에도 전단의 살포(撒布)와 배부를 맡겼다. 이와 같은 만세시위의 준비과정에서 김복현 등으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이에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동지로 결합하였다. 3월 10일 오후 2시 30분, 광주의 작은 장날을 맞아 부동교(不動橋) 아래에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학생들과 함께 미리 가마니에 넣어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등을 꺼내어 군중에게 배부하고, 만세를 선창하며 시위를 이끌었다. 이에 사람들이 동조하여 그 수가 점점 불어났고, 이후 부동교를 떠나 서문통(西門通)을 거쳐 북문(北門)에 이르기까지 광주 읍내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후 다시 방향을 선회하여 우체국 방면으로 행진하려 하였는데, 일제 기마헌병대를 비롯한 퇴역 군인들이 습격, 총칼로 사람들을 상해하면서 강제로 해산을 기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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