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영
鄭奎榮1860. 3. 18 ~ 1921. 3.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독립청원서(파리장서) 서명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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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1860년 3월 18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금남면(金南面) 대현리(大峴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치형(致亨), 호는 한재(韓齋)이다. 조선 말기 유학자로서 부친은 정원휘(鄭元暉)이며, 모친은 하진흡(河鎭洽)의 딸 진양 하씨(晉陽) (河氏)이다. 부인 조씨(趙氏)는 죽하(竹下) 조용주(趙鏞周)의 딸이며,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부친 정원휘가 병이 들었을 때, 한 의사가 사찰의 ‘황금탕(黃金湯)’이 특효라고 하자, 4년 동안 매일 집에서 30여 리 떨어져 있는 다솔사(多率寺)로 가서 약을 지어다가 아버지에게 바쳤다고 전해진다. 유림으로서 통정대부 비서감승(정3품)과 하동향교 전교에 올랐다. 성재(性齋) 허전(許傳)과 영남 유림의 태두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고향에서 서당 육영제(育英齊)를 운영하였다. 1909년 4월 정해영(鄭海榮)·정희협(鄭禧協) 등과 함께 육영제를 대신한 4년제 사립학교인 현산(峴山)학교(현 김양초등학교 전신)를 설립하고, 6년 동안 현산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스승 곽종석과 김창숙(金昌淑)을 비롯해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유림이 중심이 조직되었던 제1차 유림단 의거인 파리 장서 사건에 참여하였다. 137명의 유림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유림단 탄원서를 작성하고 이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장남 정재완을 통해서 상하이(上海)를 거쳐서 파리로 향하는 김창숙에게 거사 자금 500원을 전달하였다. 김창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한 청원서는 2,674자에 이르는 장문의 글이었으며, 그 청원서는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있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전달되었다. 임시정부는 그 청원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으며, 3,000부를 인쇄해서 파리강화회의를 비롯해서 중국과 조선 각지로 배포하였다. 일제 경찰은 4월 2일 상주 시위에서 체포된 유림 중에서 송회근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파리장서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에 일제는 장서에 서명한 장석영·송준필(宋浚弼)·성대식(成大湜)을 체포하였으며, 4월 18일에는 곽종석을 연행하였다. 다만 상주 유림들은 장서 관련 비밀을 엄수하였기에, 그 전모와 장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대한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장서에 서명한 137명의 유림 중에서 20명만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 해 6월 일제 경찰은 상하이에서 각 지역 향교로 발송한 한문본 청원서를 확보함으로써, 137명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하동·진주·진교·사천·곤양에서 계획된 만세시위를 위해서 재산 일부를 지원하였다고 전해진다.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된 스승 곽종석이 사망하자, 본인 역시 발각될 것을 우려하였으나, 체포되지 않았다. 문집인 『한재집(韓齋集)』과 기행기로 「완도기행(莞島紀行)」과 「부산기행(釜山紀行)」, 그 외 사물을 종류별로 노래한 여러 시문들이 전해지는데, 『한재집』의 서문은 김수(金銖)가 작성하였고, 후지(後識)는 장남 정재완이 기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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