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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출

鄭公出

1891. 1. 24 ~ 192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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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공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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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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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고령 우곡면(4.6
  • · 4.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1년 1월 24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사촌동(沙村洞, 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정원철(鄭元哲)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6일 거주지와 인접한 우곡면 도진동(桃津洞)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우곡면 만세시위는 4월 6일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의 박재필(朴在弼)과 도진동의 박영화(朴英華)가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박영화와 박재필은 밀의를 통해 당일인 4월 6일에 만세시위를 곧바로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날 밤 6시경 박재필과 박영화가 마을을 돌며 나팔을 불자 주민 50여 명과 현장에서 합류하였다. 박영화는 주민들이 모이자 전국의 각 지방으로 번져가는 만세운동을 고령 지역에서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동의하여 이어진 만세 열창에 참여한 후 대열을 지어 마을 안을 행진하는데 함께 하였다. 밤 11시경이 되었을 때 모여든 주민들은 우곡면사무소 마당 앞으로 이동한 후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연달아 외쳤다. 결국 밤 12시경 면장이 직접 나와 시위대의 해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응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이때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시위를 기획한 박재필과 박영화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아울러 만세시위에 참여한 마을 주민 김경술(金景述)·김순동(金淳同)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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