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로
鄭公老187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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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재령면(載寧面) 국화리(菊花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4세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은홍면(銀紅面) 학산리(鶴山里)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은홍면(銀紅面)에 거주하는 개신교 신자인 유용원(柳龍源)·정계로(鄭啓老), 사립 선명학교(善明學校) 교장 박치간(朴治幹)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울에 갔다가 1919년 3월 1일에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귀향 후 그들은 은홍면 온정장날이 열리는 3월 11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재령군 은홍면·대행면(大杏面)·서하면(西河面)의 개신교 교회 신자들을 대상으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3월 11일 오전 11시 무렵 온정리 교회 영수 이정엽(李正燁)의 집 정원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박치간의 독립선언서 낭독 후, 시위대와 함께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의거해서 질서 정연하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약속하였다. ‘대한독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큰 기를 앞세운 시위대의 일원으로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를 비롯한 지역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헌병주재소에 다다르자, 일본인 헌병 1명과 한인 헌병보조원 2명이 ‘대한독립’이라고 쓰여진 대형 깃발을 압수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는 일본인 헌병을 제압하고자 했으며, 선두에 있었던 박승도(朴承道)는 헌병들의 총검을 빼앗고, 한인 헌병보조원을 꾸짖으면서 총대로 헌병보조원을 구타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대가 시위대를 향해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였다.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일제 헌병대의 무력 진압에 저항하였으나, 일제의 무차별 총격으로 박승도·전인식(全仁植)·김학규(金學圭)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헌병대의 무력 진압과정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왼쪽 갈비에 총격을 입은 정계로와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자유와 독립을 희망하는 것은 동물의 고유한 이성으로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서 독립을 고수하려는 조선 민족이 만세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주장하면서 평양복심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였다. 하지만 그해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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