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운
鄭桂運1867. 9. 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3월 10일 이원군 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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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867년 9월 4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한당리(閑堂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10일 이원군 서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의주 등지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함남 이원군 일대에도 3월 5일에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 소식이 전달되었다. 3월 7일 이원군 천도교교구장 김병준(金秉濬)은 이원군 동면(東面)에 위치한 이원군 천도교구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 날 모임에서는 이도재(李道在)·박승룡(朴承龍)을 비롯해서 이원군내 인사 15명이 참여하였다. 모임 참석자들은 독립선언서를 기초로 해서 “우리들 조선 민족은 세계의 대세에 따라 민족 자결의 원칙에 의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2천만 동포에게 경고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 선언서를 작성하였다. 3월 8일 이도재는 이원군 천도교구실에서 공시우(孔時祐)·김병준·김선태(金璿泰)·박승룡을 위시한 15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선언서 500장을 인쇄하였다. 아울러 이도재·김병준·김선태·박승룡 등은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원지단(利原支團)을 조직하였다. 3월 10일 이원군 서면 남문리(南門里) 시장 장날에 맞추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만세시위 전날인 3월 9일 김병준·공시우·박승룡 등은 인접한 마을에 사람들을 파견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3월 10일 이원군 읍내 장터에 집결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3월 10일 이원군 서면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오전 11시 30분경 이도재와 박승룡 등은 미리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천도교인들과 그 날 시장에 모인 군중 800여 명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대 일원으로 이원군청·헌병분견소·공립보통학교·이원시장 등이 위치한 서면의 남문리(南門里), 서문리(西門里)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원군 서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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