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석
鄭甲石1894 ~ 1949.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파주 광탄면(3.27~2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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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현재의 坡州市) 광탄면(廣灘面) 발랑리(發郞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했다. 이기하(李起河)·조무쇠(曺茂釗)·이인옥(李仁玉)·남동민(南東敏)·정천화(鄭天和)·정봉화(鄭奉和)·강흥문(康興文) 등과 함께 1919년 3월 27일부터 28일까지 광탄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3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기하 등과 나라의 독립에 대한 뜻을 같이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27일을 기해 주민들을 규합하여 일제의 지역 통치 기관인 광탄면사무소로 앞으로 가서 독립 의지를 밝히는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기하 등과 함께 3월 27일 발랑리의 주민들에게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수백명의 발랑리 주민들을 지휘하여 만세시위 대열을 조직하고, 시위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광탄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광탄면사무소 앞에 도착하여, 동지들과 함께 일제의 식민통치를 규탄하고, 독립을 주장하면서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만세시위는 다음날로 이어졌고, 규모도 더욱 확대되었다. 다음날인 3월 28일은 이웃한 조리면(條里面) 봉일천리(奉日川里)의 봉일천장터의 장날이었다. 이날은 전날보다 많은 1,00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에 조리면으로까지 만세시위를 확대시킬 것을 결정하고, 시위대를 지휘하여 봉일천장터를 향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장날의 봉일천장터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공감하여 동참함에 따라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기하·조무쇠 등과 함께 더욱 사기가 오른 시위대를 지휘하여 조리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면장과 면서기 등을 장터로 끌어내 만세시위에 동참시켰다. 이에 일제는 인근의 군대와 경찰을 봉일천장터로 급파하여 비무장의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여 박원선(朴元善)·김남산(金南山) 등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 과정에서 광탄면 만세시위의 주도 인물로 파악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으로부터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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