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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규

鄭恪圭

1889. 2. 12 ~ 1965.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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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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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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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합천 삼가읍(3.18)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9년 2월 12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상백면(上栢面) 평지리(平地里)에서 태어났다. 합천군 지역 만세운동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삼가읍(三嘉邑) 읍내 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 만세시위는 3월 18일 삼가읍 읍내 시위를 시작으로, 이후 합천군내 지역에서 장이 서는 곳마다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합천군의 만세운동은 지방의 만세시위에서도 규모와 치열함에서 손꼽히는 것이었다. 그 시작점에 있었던 3월 18일 삼가읍 만세시위는 백산면(栢山面)과 상백면·가회면(佳會面)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하고 있던 정현상(鄭鉉尙)·이언영(李愿永)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세 지역 유지들은 긴밀히 연락하면서 만세시위 준비를 하였다. 정연표(鄭演彪)·공민호(孔敏鎬) 등과 함께 거사 계획에 참여하였다. 거사일은 3월 18일 삼가 장날로 하고, 큰 태극기는 각 동에 1개씩, 손에 드는 수기는 각자 마련 지참, 집합 장소는 삼가읍으로 가는 중도의 지정된 장소에 모인다는 계획을 정하였다. 3월 18일 최초 만세시위는 오후 1시경부터 삼가장터 전면의 중앙 언덕위에서 시작되었다. 애초 각각 논의되던 상백면과 백산면·가회면의 시위 계획을 통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연표와 함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군중은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장을 누비면서 시위를 전개하였고, 경찰관 주재소를 포위하기도 하였다. 만세시위는 이후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저녁 무렵인 오후 5시부터 오히려 본격화되었다. 이에 합천경찰서 경찰들과 일본인 재향군인들이 적극적인 진압에 나섰다. 결국 정연표·한필동(韓弼東)·공민호 등과 함께 시위 현장에서 주도자로 붙잡혔고, 300~400명 규모로 끈질기게 진행되던 만세시위도 오후 8시경 해산되었다. 붙잡힌 후 심문을 거쳐 만세시위 주도자로 기소되었다. 4월 2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과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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