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순
全泰順1896. 7. 19 ~ 1963. 5.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김포군 양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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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6년 7월 19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양촌면(陽村面, 현 김포시 양촌읍) 누산리(樓山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도사리(道沙里, 현 통진읍 도사리)로 이주하였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전태순(全泰淳)이 있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23일 양곡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23일 김포군 양곡장터 만세시위는 대곶면과 양촌면의 두 계통에서 준비되었다. 대곶면에서는 임철모(林哲模)·정인섭(丁寅燮)·박철복(朴哲撲) 등이 주도하였다. 양촌면의 계획은 서울에서 귀향한 박충서(朴忠緖)를 비롯한 지역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었다. 박충서는 서울 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으로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과 그 이후 연일 계속되었던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5일 이후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귀향하여 만세운동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친구인 박충서의 연락을 받고 3월 19일 같은 마을 안성환(安聖煥)의 집에서 박충서·안성환·박승각(朴勝珏)·박승만(朴勝萬)과 회합하였다. 평소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중, 이 자리에서 박충서로부터 양촌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제의를 받고, 곧바로 동의하였다. 이후 오인환(吳仁煥)·정억만(鄭億萬)도 동지로 참여하였다. 이들과 협의하여 양곡장터의 장날인 3월 23일을 만세운동 거사일로 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박충서 등과 함께 비분강개한 격문과 “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하여 모이라”는 취지의 「경고문」 10여 장을 작성하여 양촌면 내의 각 곳에 배포하였다. 3월 23일 박충서·안성환 등의 동지들과 함께 품속에 태극기를 감추고 양곡장터로 나갔다. 인근의 4개 면에서 많은 주민들이 장터로 나와 있었다. 박충서 등의 동지들과 함께 양곡장터의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박충서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양곡장터의 곳곳을 행진하였다.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들이 즉각 해산을 명령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주민들을 지휘하여 계속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度)로 감형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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