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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관

全致寬

1871. 9. 10 ~ 19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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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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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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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천안군 갈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71년 9월 10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갈전면(葛田面, 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桃源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병천(竝川)의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제 헌병의 총탄에 피격되어 사망하였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은 평화로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음에도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으로 유관순(柳寬順)과 그녀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1919년 만세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만세시위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천안의 병천 지역과 수신(修身)·성남(城南) 지역에서 준비되던 두 갈래의 만세운동이 하나로 합쳐져 대규모 만세운동이 되었다. 만세운동의 준비는 3월 13일 서울에서 귀향한 유관순을 통해 병천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유관순은 3월 16일 아버지 유중권과 숙부 유중무(柳重武),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이백하(李伯夏) 등 지역의 유력 인사 2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울 지역 만세운동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유관순은 병천의 만세운동 봉기를 제안하여 지역의 인사들로부터 적극적인 찬성을 받아 그 준비에 착수했다. 만세운동의 거사일은 아우내 장터의 장날인 4월 1일로 결정되었다. 수신면과 성남면 지역에서는 고종 장례식에 참례했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이순구(李旬求)·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을 시작으로 한동규(韓東圭)·박영학(朴榮學)·이백하 등이 동지로 결합하여 3월 29일부터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이들도 아우내장터의 장날인 4월 1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시위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백하는 병천 쪽과 수신·성남 양쪽의 만세운동 준비에 모두 관여하고 있었으나, 양쪽 모두에서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병천 쪽의 연락책이었던 김상훈(金相勳)을 통해 두 지역에서 따로따로 준비되고 있던 만세운동 계획은 하나로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유관순 등은 3월 31일 밤 매봉산을 중심으로 천안 길목, 수신면 산마루, 충북 진천(鎭川)의 고갯마루에 봉화가 올렸다. 이것은 예정대로 다음날인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사전 연락의 의미를 담은 신호였다. 이미 지역의 연락망을 통해 사전에 연락받았고, 또 전날 밤의 봉화를 확인했으므로 만세운동의 결의를 굳게 다지고 4월 1일 아침 집을 나섰다. 일찌감치 장터로 들어가 만세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1시경 긴 대나무 장대에 매단 대형 태극기가 장터의 한가운데에 세워졌다. 이윽고 조인원과 김구응이 태극기 앞으로 나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것을 신호삼아 주변의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장터로 오는 길목에서 받아 품속에 감추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병천 헌병주재소의 고야마(小山) 소장 이하 일제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 해산을 명령했다. 그러나 3,000여 명의 시위대 앞에 불과 5명의 일제 헌병들만으로는 만세시위를 해산시킬 수 없었다. 일제 헌병의 해산 경고를 무시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더욱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아우내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였다. 만세시위의 전개에 속수무책이었던 일제 헌병들이 갑자기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김상헌(金相憲)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일제 헌병의 발포에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제 헌병들을 쫓아가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일제 헌병의 발포에 격렬하게 책임 추궁을 하였다. 분노한 주민들로 인해 시위의 양상이 격화되기 시작하자, 조인원이 나서서 평화시위의 의미를 강조하며 시위대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일제 헌병의 발포와 폭력적 탄압이 다시 시작되었다. 일제 헌병의 칼에 유관순은 부상당했고, 그의 부친 유중권은 총탄에 피격되어 사망하였다. 계속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이 사망하고, 부상당하는 것을 목격함에 더 이상 분노를 자제할 방법이 없었다. 김교선 등의 지휘에 따라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다시 주재소로 쳐들어가 기물을 파손하고, 유치장 벽을 부수고 구금자를 석방하였다. 이 과정의 어느 순간 일제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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