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길
全鼎吉1889. 10. 11 ~ 1933. 6.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공주군 정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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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9년 10월 11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석송리(石松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공주군 정안면 만세시위 참여하였다. 정안면의 만세운동은 석송리에 거주하는 이기한(李綺漢)·이병억(李秉億)이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석송리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이기한과 이병억에게 만세운동의 취지와 함께 하자는 호소를 듣고 즉시 동의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기한이 먼저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수십 명의 주민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행진하는 도중 모범림의 식수 작업에 동원된 운궁리(雲弓里) 주민 등 곳곳에서 많은 주민들이 시위 대열에 합세하여 광정리에 도착했을 때 참가자가 800여 명이 넘었다.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이기한의 지휘에 따라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는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순사주재소가 시위대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공주경찰서는 진압을 위해 10여 명의 순사와 헌병대를 광정리로 급파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광정리의 만세시위는 마무리되어 모두 해산한 상태였다. 만세시위에서 돌아와 이동엽(李東葉)·노규현(盧奎鉉)·정화순(鄭化順)·김정쇠(金正釗) 등과 함께 김원일(金元日)이 경영하는 석송리의 주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 진압을 위해 광정리로 출동한 일제 경찰의 차량이 주막 앞을 지나려고 하는 것을 보고, 함께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과 차량의 진행을 가로막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과 경찰이 소총에 착검한 상태로 하차하여 차량 진행 방해의 주도자로 지목하고 체포하려고 하자, 이들을 떠밀며 저항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들은 총기를 발포하여 제압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병림(李秉霖)이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정화순·김정쇠·노규현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공주로 압송되었다. 이후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11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와 함께 징역 8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상고했으나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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