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준
張永俊1913. 4. 5 ~ 1944. 6.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창유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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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13년 4월 5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현 경북 울진군) 북면(北面) 고목리(古木里)에서 전리판서공(典理判書公) 장양수(張良守)의 후손 장석한(張錫漢)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울진(蔚珍)이다. 일제 말기에는 가경영준(佳京永俊)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40년 울진 지역의 항일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稧)에 가입하고 활동하였다. 창유계는 1930년대 후반 울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울진공작당(蔚珍工作黨)과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 운동을 계승한 항일 비밀결사이다. 1939년 10월 1일 남원수(南源壽)·임시헌(林時憲)·주영석(朱永錫)·남정성(南精性)·전원강(田元江)·남복이(南福伊)·전만수(田萬秀) 등과 함께 울진군 울진면(蔚珍面) 읍내리(邑內里) 과수원 부근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협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울진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하였던 남원수가 조국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조직 결성을 제안하였으며, 이에 뜻을 모아 구체적인 조직 결성에 나섰다. 1939년 10월 29일 남복이의 집에 모여서 국제 정세와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한 뒤 농촌 재래의 계 조직을 가장한 항일 비밀결사인 창유계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일본과 소련의 전쟁을 예견하며 그 전쟁을 기회로 삼아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해 회원을 직접 중국으로 파견하기로 하는 등 운동 방침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비밀엄수와 동지 규합에 힘써 읍면에서 점차 전국 단위로 확대해 가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매년 2회 정기 계회를 개최할 것,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말 것, 계원은 비밀을 엄수할 것, 단결을 공고히 하고 동지를 획득할 것” 등 행동 방침을 결정하고 내부 결속을 다졌다. 그리고 조직 결성 이후 1942년 5월까지 총 64차례의 집회를 개최하여 동지 규합과 함께 항일의식을 함양시키고자 하였다. 1940년 창유계에 가입한 이후 동지들과 함께 「일제말로의 비운」 등의 반일 선전 삐라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 일제의 지배 정책을 비판하고 국제 정세와 함께 독립운동의 방안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1943년 3월 남원수가 중국 충칭(重慶)의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만주로 향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어서 그해 3월 19일 장세전도 국내 정세를 전달하기 위해 다시 충칭으로 출발하려고 하다가 전날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또한 창유계 회원들이 함께 찍었던 사진이 최황순(崔晃淳)의 집에서 발견되면서 이를 근거로 창유계 관련자들에 대한 일제 경찰의 수색이 시작되어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다. 결국 일제 경찰에게 창유계 관련자 102명이 붙잡혀서 61명은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구속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며 1944년 5월 3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예심을 받았지만, 결국 같은 해 6월 7일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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