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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洪錫

洪錫

1890. 1. 5 ~ 194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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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洪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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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慶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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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2차 유림단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1월 5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서면(西面) 아화리(阿火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운초(李雲樵)이다. 1920년 8월 무렵부터 경주경찰서 도순사(都巡査)로 근무하였다. 1922년 가을 정수기(鄭守基)가 독립운동가 김창숙(金昌淑)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일제 경찰에게 상업 목적이라고 허위 보고를 하여 도항증명서를 교부하였다. 1923년 1월 무렵 정수기가 독립자금 모집 특파원으로 김창숙의 사명을 띠고 국내에 들어오자, 그 해 6월 무렵까지 약 반 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김창숙과 정수기 사이의 연락을 이어주는 등 자금 모집을 지원하고 일제 경찰의 탐지를 피하게 하였다. 이때 베이징에 있는 김창숙으로부터 정수기를 통해 「이홍석인(李洪錫印)」 이라고 조각한 수정으로 만든 도장 1개를 받았다. 1926년 4월 이른바 유림단(儒林團) 사건이 드러난 뒤 정수기가 도주하자 그 가족을 돌보았다. 그해 여름 무렵부터 1927년 4월 30일 무렵까지 정수기를 경주군 서면 아화리 최선수(崔先洙)·하동필(河東弼)의 집 등 안전한 곳에 숨겨 주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1927년 7월 2일 경북경찰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7월 13일 경북경찰부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범인은닉죄로 조사를 받았다. 1928년 8월 6일 대구지방법원 예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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