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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華鏞

華鏞

1878. 2. 22 ~ 1938.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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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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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미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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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78년 2월 22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영종면(永宗面) 운남리(雲南里, 현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동)이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이화용(李和鏞)이다. 구 한국군에 복무한 경력이 있다. 미주에서 국민회 가입 이후 1937년까지 국민의무금·인구세·후원금을 납부하는 등 독립운동자금 지원에 참여하였다. 1905년 국제 이민 브로커 마이어스(John G. Meyers)가 주도한 이민 모집에 응하여 멕시코로 갔다. 이는 허위 광고로 일본 대륙식민회사와 결탁하여 불법적으로 계약노동 이민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5월 11일 한인 1,033명과 멕시코 유카탄(Yucatán)주 메리다(Mérida)에 도착하여 에네켄(Henequén) 농장에서 1909년까지 4년간 일하였다. 1909년 5월 9일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오자,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0년 국민회가 대한인국민회로 개편되면서 4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1912년 묵경지방회(墨京市地方會) 서기로 활동하였고, 1913년 6월과 11월에는 서기 겸 재무로 선임되었다. 1914년 2월 와하케뇨(Oaxaqueno) 지방의 한국어학교인 일신학교(日新學校) 교사로 초빙되었다. 그 후 와하케뇨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로 옮겨 4월에 서기로 선정되었다. 그 후 다시 메리다지방회로 돌아와 1915년 5월까지 서기·구제원·외교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메리다지방회 대의원 및 서기, 1921년에는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또 탐피코(Tampico)로 이주하여 1923년 6월 탐피코지방회 서기로도 활동하였다. 이후 다시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 돌아와 1931년 8월 멕시코시티지방회 국치기념식에서 「망국역사담」이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1933년 동 지방회 서기로 활동하면서 9월에는 「국치가」를 지어 『신한민보(新韓民報)』에 게재하는 등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34년 병을 얻게되자 멕시코시티·탐피코 등지의 동포들로부터 위로금을 후원받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통신원으로 활동하다가 3월 사임하였다. 같은 해 6월 동 지방회와 자성단이 통합하여 새로운 지방회 임원을 구성하자, 구제원으로 선출되었다. 1936년 8월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송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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