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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春洽

春洽

190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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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春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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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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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7)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입관면(立館面) 화양동(化陽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9년 당시 28세로,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이강산(李剛山)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12월 농업이민을 목적으로 만주로 이민하였고, 펑톈성(奉天省, 현 요녕성) 금천현(金川縣) 합랍자(哈拉子)에 정착하였다. 1928년 1월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병사로서 활동하였다. 참의부는 과거 남만주지역의 독립군단을 통합했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이하 통의부)가 이념적 지향의 차이로 의군부(義軍府)와 통의부로 분열되자, 기존 통의부의 중립파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준을 받아 1924년 6월경 남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창립한 단체이다. 국경에 가까운 지역에 위치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고, 국경지역과 만주지역 일대의 한국인 포섭에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1925년경에는 가장 활발한 독립군 조직으로 명성을 올렸으나, 이후로는 점차 약화되어 1928년 12월 3부 통합운동과 혁신회의가 활성화되자 사실상 와해되었다. 이처럼 점차 활동이 약화되던 시점에 참의부는 적극적으로 무장투쟁과 재만한국인 사회 포섭을 위한 위험요소 제거에 나서고자 하였다. 이에 상관인 장수만(張秀萬)의 명령을 받고 1928년 4월 동료 두 명을 대동하여 동포를 살해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한국인 마적 가담자 박춘화(朴春化)를 금천현 대방자(大房子)에서 처단하였다. 또한 당시 남만주지역에서는 선민부(鮮民府), 한교동향회(韓僑同鄕會)와 같은 친일조직과 그 휘하의 한국인 밀정들이 횡행하였는데, 참의부와 정의부(正義府) 등은 이들에 대한 공격과 박멸에 앞장서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28년 10월경 참의부의 검찰(檢察) 이희봉(李凞鳳)·안장호(安璋浩)·이택경(李澤京) 등의 지시를 받아 참의부의 활동을 방해하던 밀정 이근효(李根孝)를 처단하였다. 1929년 7월 상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같은 해 11월 2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공판 과정 내내 자신의 행적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공포하면서 “죽음은 이미 각오하였거니와 남자가 죽을 일이라고 숨기겠느냐.”라고 주장하여 재판장과 취재진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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