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섭
鄭奎燮1928. 5. 13 ~ 2016. 11.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명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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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928년 5월 13일 경상남도 진양군(晋陽郡) 내동면(奈洞面) 귀곡리(貴谷里, 현 진주시 귀곡동)에서 아버지 정용근(鄭用根)과 어머니 하차임(河且任)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임진왜란 당시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의 13대 종손이다. 자는 문현(文見), 호는 농운(農雲)이고, 일제 말기에는 해본규섭(海本奎燮)이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1943년 진주공립중학교(晉州公立中學校)에 다니면서 동교생인 강필진(姜必鎭)·김상훈(金相勳)·하익봉(河益鳳) 등과 함께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광명회는 독서 모임으로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를 통해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회원 가운데 박노근(朴魯瑾)의 아버지와 하익봉의 삼촌이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원 모두 졸업한 후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약속하였다. 학업과 광명회 활동을 병행하던 중 1944년 9월 진주중학교 학생들과 진해비행장 공사 노역에 동원되었다. 이때 천막 막사에서 숙식하면서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한국어 사용의 생활화와 독립군의 활동 사항 전파 등 광명회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 일로 광명회 활동이 드러나면서 1944년 9월 23일 붙잡혀 진해헌병대로 이송되어 구금되었다. 같은 해 11월 회원 7명과 함께 부산지검으로 송치되었고,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어 9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다. 그러다가 1946년 6월 풀려났다. 광복 이후 교사로 재직하였고, 진주향교 전교로 활동하였다. 1970년에 진주향교의 사람들과 함께 뜻을 모아 선조 정문부를 배향하는 가호서원을 설립하였다. 2006년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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