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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憲基

鄭憲基

1917. 1. 10 ~ 198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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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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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청년동지회(朝鮮靑年同志會)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조선청년동지회(오사카(大阪) 후세(布施))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7년 1월 10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읍(康津邑) 남포리(南浦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복산헌기(福山憲基)이다. 1926년 9월경 형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 나마즈에(鯰江)심상소학교와 조토(城東)고등소학교를 거쳐 나마즈에상업전수학교 1학년을 수료한 뒤 철공소의 직공이 되었다. 1941년 8월경 형과 함께 금속가공공장을 경영하였는데, 평소 재일한인에 대한 모멸적 언동과 차별대우를 경험하면서 민족의식을 품고 독립운동에 종사한 동향 선배인 김상만(金相萬)에게 감화를 받았다. 이후 민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통치권에서 이탈하여 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1941년 4월 하순 이전부터 동거하던 복천영식(福川榮植)과 함께 한국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청년이 민족의식에 눈을 떠 궐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당면 활동방침으로 정하고, 먼저 오사카의 우수한 한인청년을 동지로 획득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서 1941년 8월경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함께 오사카부(大阪府) 포시(布施)에서 비밀결사 조선청년동지회(朝鮮靑年同志會)를 조직하였다. 1941년 12월 일본이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도발하자 동지들과 모임을 갖고 국제정세와 전쟁의 추이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태평양전쟁이 장기화되면 경제와 무력 면에서 모두 연합국이 승리할 것이며 일제의 패망은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예견하였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 한인 청년들이 일제히 봉기하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던 중 이러한 행적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1943년 2월 16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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