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學龍
鄭學龍1908. 1. 4 ~ 1951. 3.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죽마계(竹馬楔)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죽마계(竹馬楔)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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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8년 1월 4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초와면(楚臥面) 관수리(寬秀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조천학룡(鳥川學龍)이다. 1940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대학원에 재학 중 비밀결사 죽마계(竹馬楔)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죽마계는 1940년 2월경 당시 니혼대학(日本大學)을 졸업하고 귀국하게 되었던 안병익(安秉翊)이 한인 유학생 김사복(金思宓)과 이창덕(李昌德)에게 한국에서 이전부터 내려오던 ‘계’의 방식을 통해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단결을 도모하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결성되었다. 최초 계장으로 김덕순(金德順)을 추대하고 합법을 위장하기 위하여 단체의 명칭을 죽마계로 정하였으며, 장래의 활동무대는 한국이므로 본부를 서울에 지부를 도쿄(東京)에 두기로 하였다. 죽마계 결성 후 같은 해 3월 김덕순·안병익·안종식(安鍾植)·이일동(李一東) 등 4명이 졸업하여 귀국하게 됨으로써 김사복이 도쿄 책임자가 되었고, 7월에는 본부를 도쿄에 두기로 하였다. 1941년 4월에는 연구부와 사업부를 설치하고, 연구부 책임자를 김사복·사업부 책임자를 안병익으로 하였다. 이때 서울 지부에 있는 사업부 부원으로 소속되어 안병익·안종식·김덕순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와 같은 죽마계의 활동은 도쿄경시청(東京警視廳)에 탐지되어 1941년 6월 30일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2년 3월 19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도쿄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오랜 조사와 감금으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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