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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良洞

趙洞

1875 ~ 190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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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良洞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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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산남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산남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산남의병부대 최세윤(崔世允) 대장의 휘하 포군(砲軍)으로 참여하여 흥해(興海)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일으킨 산남의병부대는 영천을 중심으로 경북 남동부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07년 10월 8일 포항(浦項) 죽장면(竹長面) 입암(立巖)전투에서 정용기를 비롯한 중군장 이한구(李韓久) 등 여러 장령들이 전사하는 큰 희생을 치렀다. 정용기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이 다시 의병부대를 이끌었으나, 군비의 고갈과 일본군의 공세로 같은 해 12월 8일 일단 의병부대는 해산되었다. 1908년 3월 초 잔여 의병들은 청송 보현산(普賢山) 거동사(巨洞寺)에서 최세윤을 대장으로 재기하였다. 지구전과 유격전이란 전략으로 본부 외에 부대를 지대별(支隊別)로 나누어 활동하게 하였다. 최세윤 의병부대는 남동대산(南東大山)을 근거로 경북 흥해·포항(浦項)·경주(慶州), 경남 울산(蔚山)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각 지대를 총괄하기로 하였다. 이때 최세윤 휘하의 흥해지역에서 군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해 4월 3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흥해군 북안면(北安面) 수성동(水成洞)에서 동장(洞長)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대구경찰서 소속 정찰대의 급습을 받았다. 최세윤 대장 휘하 윤재만(尹在萬) 등 8명이 사망하고, 포군(砲軍) 어락이(魚洛伊)·차경수(車敬守)·이주발(李周發)과 함께 붙잡혔다. 중군장 이석이(李石伊)의 부하 김수달(金守達)과 흥해군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갑이(李甲伊)도 정찰수사대에게 붙잡혔다. 그해 4월 15일 오전 2시 무렵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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