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춘
張景春1880. 10. 8 ~ 1923. 5.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운경 의병부대
- · 강한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정운경 의병부대)
- · 후기의병(강한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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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0년 10월 8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감곡면(甘谷面) 왕장리(旺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창식(張昌植)·장원식(張元植)이다. 활동 당시에는 충북 괴산군(槐山郡)에 거주하면서 상업에 종사하였다. 1905년 정운경(鄭雲慶)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고, 1907년 강한조(姜漢祚) 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예로 충북 제천(堤川) 출신인 정운경은 을미사변 이후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하였다. 정운경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국권침탈이 현실로 다가오자, 이규석(李圭錫)·김홍경(金鴻卿)·강수명(姜秀明)·지원영(池源永)·김지현(金知鉉)·정해훈(鄭解薰) 등과 더불어 충북 단양(丹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단양·제천·영춘(永春)·청풍(淸風) 등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의병부대의 규모는 300~4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때 정운경 의병부대에 가담하고, 박달재전투·단양전투 등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정운경 의병부대는 원주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흩어졌고, 의병장 체포 이후 결국 해산되었다. 1907년 (음)8월 6일 장사를 하기 위해 괴산군 죽산면(竹山面)에 위치한 백암시장(白岩市場)에 갔다가, 충북 괴산지역에서 약 300명을 이끌고 활동하던 강한조 의병부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강한조의 권유를 받고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즉시 십장(什長)으로 임명되어 다시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백암시장에서 일제 순사 1명을 처단한 후 소지하고 있던 총 1정을 군수품으로 획득하였다. 이후 동료 의병 70여 명과 함께 이천(利川)·진천(鎭川)·음성(陰城)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9월 25일 동료 이교철(李敎喆)과 함께 고봉리(高峰里, 현 충북 음성군 금왕읍 내곡리)의 민가에서 유숙하다가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07년 12월 28일 경기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종신 유형(流刑)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1908년 1월 21일 평리원에서 다시 유형 15년을 받았다. 전남 지도군(智島郡) 지도로 유배되었다가, 2년 7개월 만인 1910년 8월에 해금되어 풀려났다. 이후 중국 콴뎬현(寬甸縣)으로 망명해 유인석 휘하에서 1916년까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다시 귀국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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