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泰源
泰源1884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윤숙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구암면(龜岩面) 금평리(錦坪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나이가 26세이므로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지물상(紙物商)을 생업으로 하였다. 1908년 (음)3월부터 7월까지 순창군 일대에서 활동하던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에 참여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윤숙은 수십 명의 포수들을 이끌고 활동하다가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합류하였다. 그러고 최익현이 의병부대를 해산한 이후에는 30명에서 100여 명 정도의 의병을 이끌고 순창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동향 출신인 양윤숙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가입한 후 동료들과 함께 순천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주로 망을 보며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1908년 (음)3월 5일과 10일 동료 10명과 함께 순창군 구암면 산내리(山內里) 이장인 최문선으로부터 각각 엽전 50냥을 모집하였다. 그해 (음)4월 26일에는 동료 10명과 더불어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방화치리(芳花峙里) 이장 임씨의 집에서 엽전 50냥을 징수하였다. (음)5월 5일에는 구암면 금석상동(金石相洞) 동장으로부터 엽전 30냥을 모금하였다. (음)7월 15일에는 무림면 남정동(南井洞) 동장 진화경(晋化京) 집에서 엽전 10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10월 하순경 순창헌병분견소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09년 11월 15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12년 9월 13일 이른바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詔書)’로 같은 해 11월 26일 형을 면제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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