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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在洪

在洪

189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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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在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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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양상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상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09년 작성된 일제 보고문서에 따르면 당시 나이가 20세로 1890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고지면(古支面) 대판리(현 금성면 봉서리)에 거주하였다. 1908년 5월부터 1909년 6월까지 전남 담양·동복(同福)·광주(光州)·장성(長城) 일대에서 활동한 양상기(梁相基) 의병부대에 참여해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양상기가 활동한 전남 광주와 장성은 호남 의병들이 일제 군경을 상대로 가장 오랫동안 유격전을 전개한 지역이기 때문에 일제의 의병 탄압이 집중적으로 자행되었다. 1908년 광주경찰서 순사로 근무하던 양상기는 의병활동에 참여한 부친 양진여(梁振汝) 등과 소통했다는 이유로, 같은 해 4월 23일 파면되었다. 그러자 양상기는 경찰로서의 경험을 살려 80여 명을 모집해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대한제국 해산 군인까지 참여한 양상기 의병부대가 담양에 머물렀을 때 의병활동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1909년 6월 8일 광주경찰서장 무라가미(村上則貞)가 경무국장(警務局長)에게 보낸 전보에 따르면 의병들을 탐색하기 위해 출장중이던 순사 야마모토(山本好太郞)와 조선인 순사 2명에게 담양군 우치면(牛峙面) 송강정(松江亭)에서 붙잡혔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양상기의 부하로 판명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6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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