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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翊相

翊相

1887 ~ 191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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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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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茂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무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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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전북
  • · 경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전라북도 무주군(茂朱郡) 일안면(一安面) 승장리(升場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나이가 24세이므로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9년 전북 장수군과 경상남도 안의군(安義郡)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음)7월 19일 박화윤(朴化允)·이사필(李士必)·이달서(李達西)·이문재(李文在)·서학삼(徐學三)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함께 하기로 계획하였다. 같은 날 그들과 함께 장수군 계북면(溪北面) 양악리(陽岳里)에 사는 정군오(鄭君五)로부터 엽전 10냥을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그해 10월 10일에는 오전 6시경 동료들과 더불어 경남 안의군 고현면(古縣面) 모이동(某里洞) 산막(山幕)에 위치한 일본인 벌목공들의 마을을 습격하고, 일본인 목공(木工) 궁곡진오랑(宮谷辰五郞)을 처단한 후 손가방 등 13개의 물품을 군수품으로 모집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0년 3월 1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와 모살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5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10년 7월 1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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