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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應西

應西

188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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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應西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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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김춘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춘수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나이가 28세이므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알 수 없다. 활동 당시에는 강원도 화천군(華川郡)에 거주하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김춘수(金春洙) 의병부대에 가담한 이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일본군 보고문서에 따르면 김춘수는 안무장(按撫將)이라 불렸으며,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7년 8월경 김춘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당시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강릉천(江陵川) 부근을 지나가다가, 김춘수가 이끄는 100여 명의 의병들이 진을 치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의병부대에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성원(李成元)과 김성관(金成寬)이 있었고, 이들로부터 “나라의 정세가 위급하니 남아가 이런 때를 당하여 어찌 편안하게 이를 볼 수 있으리오. 그대도 역시 참가하여 일본인들을 배척하고 나라 일을 같이 하자”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즉시 김춘수 의병부대에 가담한 후, 다른 의병들과 함께 경기도 양근(楊根)·포천(抱川)·가평(加平)·지평(砥平)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1907년 10월 1일 여주군(驪州郡) 천양(川陽)에서 전개된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여하였으나, 동료 30여 명이 전사하였다. 같은 달 22일 홍천군(洪川郡) 남창(南倉)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으나, 이때도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1908년 4월 3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종신 유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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