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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允八

允八

1886 ~ 191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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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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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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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동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동수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9)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오치면(梧峙面) 외촌리(外村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나이가 25세이므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9년 5월 김동수(金東洙) 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동수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분격하여 이원오(李元五)·조경환(曺京煥)·양상기(梁相基)·김현길(金玄吉) 등과 함께 전남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고 처음에는 양진여(梁振汝) 의병부대에 합류해서 활동하다가, 1909년 4월경 6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나와 전남 화순(和順)을 근거지로 하며 독자적으로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1909년 5월 10일 김동수 의병부대에 가담하고, 도포사(都砲士)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18일까지 의병장 김동수를 포함한 동료 의병 15명과 함께 광주군 일대를 돌며 활동하였다. 5월 19일에는 의병부대에서 사용할 총 11정과 의복 등을 보관하라는 김동수의 명령을 받고, 광주군 오치면(梧峙面) 삼각리(三角里)에 위치한 친형 임윤오(林允五)의 논에 파묻어 보관하였다. 5월 23일에는 김동수와 논의한 후 김재민(金在珉) 등과 함께 광주군 덕산면(德山面)으로 가서 일전에 의병부대를 헌병대에 밀고해 피해를 입게 한 덕산면장 백계수(白桂洙)와 이장 정현구(丁鉉玖)를 처단하였다. 이외에도 같은 달 광주군 덕산면(德山面)에서 일본군 헌병대 광주분견소의 병력들과 접전을 벌였고, 광주군 갑마보면(甲馬保面) 본촌(本村)에서 조우한 광주경찰서 경찰들과 교전하였다. 그러다가 1909년 6월 22일 붙잡혀 광주경찰서에 수감되었고, 김재민·임윤오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11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와 모살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0년 2월 26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그해 5월 11일 대구감옥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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