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道鳳
道鳳미상 ~ 1896. 2. 24
관련 단체
- · 유인석 의병부대(호좌의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전기의병(유인석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출생일시와 출신지, 가족관계, 성장과정 등은 자료 부족으로 알 수 없다. 의병활동 당시에는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수산면(水山面) 도기마을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예천(醴泉)이다. 자는 동일(東一)이고, 이명은 임도수(林道洙)이다.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군에 의해 아버지가 목숨을 잃은 것을 계기로 1896년 거의한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호좌의진)에 들어가 후군(後軍) 소속으로 제천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을 치르고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공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배일감정이 격화되면서 각 지역에서 유생들을 중심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제천에서 거의한 유인석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유인석은 1896년 1월 영월(寧越)에서 문인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중군장에 이춘영(李春永), 전군장에 안승우(安承禹), 후군장에 신지수(申芝秀), 선봉장에 김백선(金伯善) 등을 임명하고 의병부대를 편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2월 제천으로 이동하면서, 모여드는 의병들을 규합해 부대를 확대·개편하였다. 유인석 의병부대는 1896년 2월 16일 충주성을 공격한 후 다음날 입성해 관찰사 김규식(金奎軾)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유인석은 「격고내외백관(檄告內外百官)」을 포고하여 관리들의 각성과 의병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 휘하에 있던 의병들을 보내 각지에서 친일관리를 처단하게 하고, 의병을 모아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해 3월 의병부대는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으로 충주성을 내어주고 청풍(淸風)과 단양(丹陽)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다시 제천으로 근거지를 옮긴 후 유인석은 전사한 이춘영의 후임으로 전군장이었던 안승우를 임명하였고, 후군장 신지수에게 강령(江寧)의 길목을 막아 적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이때 신지수 휘하에서 장수로 활약하면서 제천을 방어하는 데 주력하였다. 1896년 4월 서울에서 장기렴(張基濂)이 관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합세하여 충주 쪽으로 접근한다는 소식을 들은 홍대석(洪大錫)이 서창을 수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23일 서창을 지나던 광주산성장 김태원(金泰元) 의병부대와 만나 남쪽으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강령을 지키던 후군도 적과 만나 교전하였다. 또 충주 광동(廣洞, 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으로 접근하였다가 이범직(李範稷)과 안성해(安成海)의 방어에 막혀 물러섰던 일본군이 2월 24일 강령고개 남쪽의 독골고개(獨谷, 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로 밀려왔다. 충주 광동으로부터 들어오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독곡에서 교전을 치르다가, 후군 장수인 채동집(蔡東集)·홍귀봉(洪貴鳳) 등과 함께 사망하였다. 이후 이들과 더불어 후군삼의사(後軍三義士)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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