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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건

高永建

1897. 12. 12 ~ 194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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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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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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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12월 12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대저면(大渚面) 평강리(平江里,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고영건(高泳健)·고광수(高光洙)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동래군에 소재한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에 재학하고 있었다. 동래군 읍내 시위는 서울과 평양에서 시위를 벌였던 학생들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3월 초 서울의 학생 대표가 부산을 방문해 ‘경성학생단’ 명의의 독립선언서를 부산상업학교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돌아갔다. 평양의 신현수(申玄守)는 부산상업학교 학생 박성해(朴性海)에게 평양에서의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보내왔다. 부산상업학교 학생들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만나 서울과 평양의 시위 소식을 전달하며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부산상업학교 학생들로부터 각지의 시위 소식을 접하고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 7~8명의 친구들과 함께 동래군 수안동(壽安洞) 이한주(李漢周)의 집에 모여 동래에서도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거사 일은 3월 13일 읍내 장날로 정하고 11일부터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전해 받은 선언서를 인쇄하고, 구한국기와 독립만세기 등을 은밀히 만들기로 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등사판을 이한주의 집으로 가져와서 선언서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거사 일인 13일까지 친구들과 독립선언서 500부, 독립만세기 2개, 구한국기 수백 개,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고 크게 쓴 종이 수백 장 등을 인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경 김귀룡·엄진영·서진령(徐鎭泠) 등 친구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구한국기 등을 가슴에 품고 동래군청 앞으로 가서 ‘대한국 독립 만세’라고 쓴 2개의 깃발을 세우고 독립선언서와 ‘오왕약살’이라고 쓴 종이 등을 배포하였다. 장터는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변하였다.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에 올라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이에 호응해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본 경찰이 무력으로 제지하면서 학생들을 검거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한 후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둥베이(東北)로 가서 1926년 창춘(長春) 삼립정(三笠町)에서 특산상(特産商)을 경영하면서 정의부(正義府)에 군자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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