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仲伯
仲伯1877 ~ 1910. 5.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기삼연 의병부대
- · 박도경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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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0)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서삼면(西三面) 외현리(外峴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기삼연(奇參衍) 의병부대, 박도경(朴道京) 의병부대, 김여회(金汝會) 의병부대 등에 소속되어 전라남북도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기삼연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일찍이 1896년에 거의 한 바 있었는데,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당하자 이에 분격하여 그해 9월 전남 영광(靈光) 석수암(石水庵)에서 다시 거의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다. 부대의 규모는 약 300명이었다. 이때 1907년 12월 기삼연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종사(從事)의 직임을 맡아 주로 군자금 모집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1월 동료 의병 2명과 함께 장성군 서삼면 신기촌(新基村) 강창문(姜贊文)으로부터 엽전 3부(負, 1부는 약 120냥 정도)와 소 2마리를 징수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삼연이 체포당해 총살되어 사망하면서 부대가 해산하게 되자, 박도경 부대에 가담하여 항쟁을 이어갔다. 박도경 부대는 약 100명 규모로, 이때 총으로 무장한 동료 의병 80여 명과 함께 전북 고창군을 중심으로 1908년 4월경까지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8월 김여회 부대로 소속을 옮긴 후 사초십장(四哨什長)의 직임을 맡아 총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부대원들을 이끌고 10월까지 전남 장성군과 전북 순창군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하였다. 1909년 일본의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탄압이 거세짐에 따라 김여회 의진의 활동 또한 어려움을 맞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김순봉(金順奉) 등 동료 4명와 함께 부대를 나온 후 소규모로 조직을 만들고 대장이 되어 1909년 6월까지 장성군에서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1909년 2월 21일 전남 장성군 읍서면(邑西面) 중초리(中草里)에 거주하는 의병 밀고자 이주절(李周節, 일명 李致玉)을 추적하여, 장성군 서삼면 신기리 강창문의 집에 숙박하고 있던 것을 체포한 후 서삼면 임곡리(任谷里)로 가는 길가에서 처단하였다. 그러던 중 붙잡혀 1910년 3월 5일 대구공소원에서 이른바 폭동죄·강도죄·모살죄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고, 그해 5월 11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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