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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應胄

崔應胄

187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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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應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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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벽동(碧潼)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벽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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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중흥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송서면(松西面) 사서리(四西里) 출신이다. 일제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20년 체포 당시 42세이므로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1920년 7월에 평북 벽동의 대안(對岸)인 중국 지린성(吉林省) 콴뎬현(寬甸縣)으로 이주하였다. 1920년 8월 이주한 지린성 콴뎬현 대황구(大荒溝) 부근 김봉국(金奉國)의 집에 대한중흥단(大韓中興團, 이하 중흥단) 지단(支團)이 설치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중흥단은 독립중흥단(獨立中興團)으로도 불리는데, 1920년대 초 백인균(白寅均)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만주 퉁화현(通化縣) 칠도구(七道溝)에 본부를 두고, 퉁화현 남쪽과 지안현(集安縣) 노령(老嶺) 이남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내부 분열과 일제의 공작으로 조직의 규모를 크게 키우지는 못하였으나, 총부장(總部長) 김영태(金泳泰)·최상태(崔尙台), 군총재(軍總裁) 백운잠(白雲岑) 등의 활동상이 확인되었다. 중흥단은 한족회(韓族會) 계열의 단체로, 한족회와 연계하여 활동하였으며 특히 국내 가운데 고향인 평북 벽동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에 중흥단에 가입하여 결사대 서기로 활동하며 평북에서 활동하였다. 주 임무는 군자금을 모금하고 일제의 동향을 정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대원(義勇隊員) 문학빈(文鶴彬)·송문주(宋文冑)·하찬린(河贊麟)이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평북 삭주군(朔州郡)에 출장을 와서 동향인 벽동군 송서면에 사는 김광식(金匡式)에게 독립운동을 지원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찬린은 자료에 따라 중흥단 결사대원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때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하던 김광식이 일제 경찰에 밀고하면서, 벽동군 구곡면(九曲面)에서 일본 경찰과의 교전 중 문학빈은 중상을 입고 하찬린은 총살당하였다. 당시 지단의 행적이 발각되어 8월 29일 새벽 3시에 김봉국에 집에 모여 있다가 벽동경찰서 경찰 10여 명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나 미리 정보를 얻은 단원들과 함께 절벽 위에 매복하고 있다가 일제 경찰이 통과하자 총격을 가하였다. 교전 중 단장 전재호(田在皓)는 행방불명되었으며, 이때 붙잡혀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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