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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흥

鄭士興

1887 ~ 192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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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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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경성(鏡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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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어랑면(魚朗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 지역에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부대들이 대거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발생하였다. 4월 15일 만주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 및 의병계열 독립운동가 56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복벽주의(復辟主義)를 표방하였으며, 도총재(都總裁)와 총단(總團)을 두었고, 중앙본부와 지방 지부를 나누어 서간도 지역 9개현에 지단(支團)을 조직하였다. 또한 군사 조직으로 지린성 푸쑹현(撫松縣)에 본부를 두고 4개 중대로 구성된 남만주제일사단(南滿洲第一師團)을 두었다. 나아가 대한독립단은 1919년 8월과 19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도 지단을 설치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하여 평안도·황해도 등지에 80여개의 지단을 설치하였고, 국내의 인사들과 연합하여 단원 확보 및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한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는데, 대한독립단은 공화주의를 표방한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국독립단과, 복벽주의를 주창하고 단기를 연호로 삼는 기원독립단으로 분리되었다. 민국독립단은 1920년 8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사령부에 통합되었고, 기원독립단은 독립적인 조직을 유지하였다. 이때에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결사대의 분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완력이 세어 능히 열 사람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1921년 10월 만주 지린성 옌지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과 육도구(六道溝) 부근에서 군자금을 2만원 모집하였으며, 둔하(屯下)에 근거지를 두고 임시정부와 연락하였다. 그 해 (음)11월 18일 동향 사람인 정희삼(鄭希三)을 대한독립단에 가입시켰다. 1922년 2월 17일 오전 11시, 용정촌 부근에 있는 계시촌(鷄時村)의 구덕대여관에 유숙하던 중, 밀정에 의해 위치가 발각되어 일제 경찰 5명과 교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게 살해되어, 35세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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