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옥
鄭明玉미상 ~ 1921. 3. 2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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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 등은 확인할 수 없다. 만주로 이주 후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창바이현(長白縣) 일대에서 거주하면서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1919년 국내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만주의 한인사회에서도 고조된 민족의식을 계승하며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설립하였다. 일제는 만주에서 점점 확대되어 가는 한인들의 독립운동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중국 관헌과 몇 차례 소탕작전을 실행하였으나, 제대로 된 효과가 거두어지지 않자 이른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1920년 10월 일제는 훈춘사건을 조작한 뒤, 2만 명의 병력을 이용하여 동·서·남·북 네 방을 좁히면서 간도로 침입하였다. 그리고 토벌계획과 함께 마적을 이용하여 독립운동 세력을 토벌할 계책을 꾸렸다. 조선총독부는 중야천락(中野天樂)을 내세워 중국 마적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하여 약 500명에 달하는 ‘토벌대’를 조직하고 행동지침을 하달하였다. 장강호의 임무는 일본군을 대신하여 토벌하지 못한 사각지대, 창바이현 일대의 독립운동 세력과 한인 마을을 소탕하는 것이다. 이 시기 창바이현 일대에서는 한인 400여 명이 체포되었고, 212명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1921년 3월 2일 독립활동을 전개하던 중 창바이현 마야자(馬也子)에서 김창순(金昌淳)·김이천(金利天)·하승천(河昇天) 등 7명과 같이 일본군으로 위장한 마적들에 의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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