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고국한

高國漢

1888. 1. 19 ~ 1925. 7. 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고국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1888년 1월 19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고한규(高漢奎)를 사용하였다. 3·1운동 당시 대호지면의 독립 만세 운동은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 등 유생들을 중심으로 지역의 대표적인 인사들이 결합하여 추진되었다.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에 참예하려고 상경하였다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목격한 남주원 등은 이에 공감하여 대호지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귀향하였다. 이들은 대호지면 면장 이인정(李寅正)과 면사무소 직원들, 지역 유지, 천도교도 등과 함께 협의하여 인근의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 일로 결정하였다.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이 앞장서서 만세 시위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송재만은 리(里) 별로 연락망과 행동선봉대를 구성하고,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 등사, 대형 태극기 제작 등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다수 주민의 동원을 위해 면장 명의로 “각 가정에서 4월 4일 오전 주민 1명씩 관내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라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하여 각 마을 구장을 통해 주민들에게 알렸다. 4월 4일 아침, 사전 통지에 의해 600여 명의 주민이 대호지면사무소에 모였다. 면장 이인정이 나서 모임의 목적을 연설하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행진 도중 시위 군중이 합세하여 더욱 늘어났다.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장터 한복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고 경찰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후 출동한 일제에 붙잡혀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