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鴻來
鴻來1893. 7. 28 ~ 1920. 10. 19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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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893년 7월 28일에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이하 국민회)의 통신부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3월 북간도의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항일단체이다. 일명 간도국민회라고 불린 국민회는 북간도의 옌지(延吉)·왕칭(汪淸)·허룽(和龍)·훈춘(琿春)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협력하고 안무(安武)의 국민회군(國民會軍)을 거느린 항일 단체로서, 북간도의 한인 교포들을 기반으로 한 조직이었다. 의병 출신인 회장 구춘선(具春先) 등이 중심이 되어 민정조직과 군사조직을 구성하였는데, 대한독립군과 국민회군은 군사조직 역할을 하였고, 구춘선이 이끈 대한국민회는 민정기구 역할을 하였다. 항일투쟁을 지원하는 한편, 무장투쟁도 수행하였다. 1919년 11월 무렵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기구가 된 국민회는 한인 동포의 권익 보호와 군자금 모집, 독립군 양성 등에 힘쓰면서, 국민회군과 대한독립군의 무장투쟁을 활발히 지원하였다. 그 결과 1920년 6월의 봉오동 전투와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의 승리 등 북간도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하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는 청산리 전투 직후 2만 여 병력을 투입해 소위 ‘간도토벌’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소속된 북간도 일대의 국민회원 다수는 일본군 19사단에 의해 학살당하였다. 1920년 10월 12일부터 간도를 향해 4면에서 포위 작전을 펼친 일본군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한인사회를 초토화시키기 위해 양민을 학살하고 학교와 교회를 불태우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구춘선 등 국민회의 주요 간부는 연해주로 피신하였으나, 수많은 국민회 회원은 일본군에게 피살당하였다. 이때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 직후인 10월 19일 허룽현(和龍縣) 강성동(江城洞)에서 일본군 19사단 보병 74연대에 붙잡힌 뒤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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