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春涉
春涉1896 ~ 1925. 2.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극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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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2) 중국 지린성(吉林省) 린장현(臨江縣) 칠두동(七頭洞) 상촌(上村)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모친과 동생의 사망 이후 채무자를 피해 지린성 창바이현(長白縣) 팔두동(八頭洞) 오구류(五口流)를 거쳐 평안북도 후창군(厚昌郡) 동신면(東新面) 두지동(杜芝洞)으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이영실(李永實)이나, 공판기록에서는 이영실이 본명이고 이춘섭이 가명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부친과 함께 생업에 종사하다가 재만 한인 독립단체인 태극단(太極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1919년 조인관(趙仁官)을 단장으로 하여 정삼승(鄭森承)·김동준(金東俊) 등이 창바이현과 린장현을 주요 거점으로 삼고 창설한 단체이다. 단원수는 2,000여 명으로,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경지대의 파출소나 경찰을 주로 공격하거나 국내로 진공하여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등을 시행하였다. 이때 태극단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음)4월 10일 동료 한석복(韓石福)·강석환(姜錫煥)과 함께 창바이현 팔도구(八道溝) 신판자(新判子)에서 엿장수와 잡화 행상인인 한인 두 명의 거동이 수상하여 신체수색을 하니, 한인들의 이름이 가득한 명단을 발견하고 이들을 밀정으로 판단하여 창바이현 팔두동으로 연행하여 처단하였다. 그러나 같은 재만 한인인 유신지(柳新枝)의 고발로 이와 같은 행위가 일제 경찰에게 파악되어, 1924년 (음)2월 23일에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후창경찰서에서 모진 심문과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10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와 살인죄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달 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12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집행되어 1925년 2월 3일 평양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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