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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彬
鍾彬미상 ~ 1920. 10. 15
미상만주방면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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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옌지현(延吉縣)에서 거주하며, 1920년 독립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일본군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패배에 대한 보복행위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독립군을 제거한다는 원칙을 수립하였다. 이에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마적(馬賊)이 훈춘현(琿春縣)에 있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여 불태운 ‘훈춘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은 마적단, 한국독립군,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군이 합작하여 저지른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빌미로 대규모 병력을 간도로 출병시켰다. 이소바야시(磯林) 소장, 히가시(東正彦) 소장, 기무라(木村) 대좌 등이 지휘했던 일본군 부대는 한국독립군을 토벌할 뿐만 아니라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한인을 무차별로 학살하였다. 이처럼 일본에 의해 조직적으로 대규모 학살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독립단체에 가입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0월 15일 동지 허민유(許敏柳)와 함께 옌지현 의란구(依蘭溝)에서 일본군에게 총살당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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