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義洙
崔義洙188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권업회
- · 고려민족중앙총회
- · 대한국민의회
- · 권업신문
- · 한인신보
- · 국민대표회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국민대표회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함경남도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철아(鐵兒)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에서 권업회(勸業會) 서기, 고려민족중앙총회(高麗民族中央總會) 제야(Зея) 지부 대표,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평의원 등 독립운동단체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민학교(韓民學校) 교사로 한인 동포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같은 해 1월 14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개최된 권업회 총회에서 서기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권업회는 19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조직되어 기관지 『권업신문(勸業新聞)』을 발행하고, 교민들의 단결과 지위 향상에 힘쓰는 한편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1916년 전제익(全濟益) 등 블라디보스토크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활동하였고, 1917년 4월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학준(金學俊)·윤능효(尹能孝) 등과 함께 기독교전도회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5월경 유력 한인들과 5,000루블을 모집하여 운하선업(運荷船業)을 경영하고 그 이익금과 기부금으로 해산된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뒤를 잇는 신문을 발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최재형(崔在亨)·김이직(金理直)·이갑(李甲) 등과 함께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 50주년 기념비를 연해주 포시에트(Посьет, 지신허(地新墟))에 세울 것을 결의하고 의연금을 모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18년 말 철혈단(鐵血團)이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되어 주로 북간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비밀결사 광복단(光復團)과 통합해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하자, 김철훈(金哲勳), 김진 등과 함께 철혈단을 이끌고 철혈광복단을 조직하는 데 힘썼다. 철혈단은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권업회가 해산되면서 연해주 수청(水淸, Сучан) 지방을 중심으로 “고려민족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노령고려인의 유지(有志)한 청년들을 결속해 미래의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과업으로 조직되어 비합법적인 비밀결사의 형식으로 활동한 단체이다. 1919년 7월 고려민족중앙총회 제야 지부 대표로서 니콜리스크(Никольс, 현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에서 다른 지부 대표들과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 지원을 논의하였다. 같은 해 12월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민족의식 고취 및 지식 보급, 항일여론 조성 등으로 목표로 창간했던 『한인신보(韓人新報)』 서기로 활동하였다. 1920년경 대한국민의회의 평의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해 4월 연해주에 침공한 일본군에 의하여 ‘4월 참변’이 일어나자 김하석(金夏錫)·김진(金震)과 함께 수청 청지거우 마을(청지동)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블라고베셴스크(Благовещенск, 武市)로 이동하였고, 이듬해인 1921년 문창범(文昌範)과 고려혁명군정의회(高麗革命軍政議會)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9월 국민대표회의 대표자로 중국 상하이(上海) 국민대표회의 준비회에 파견되었다. 1923년 1월부터 5월경까지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여 창조파(創造派)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8월경 창조파 위원들과 함께 러시아 지역에서의 임시정부 수립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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