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대
鄭錫大1908. 9. 14 ~ 1945. 5.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삼척청년동맹
- · 삼척농민조합
- · 삼척노농공작위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삼척군 삼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8년 9월 14일 강원도 삼척군(三陟郡) 근덕면(近德面) 매원리(梅院里)에서 태어났다. 1923년 3월 삼척보통학교(三陟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서울 배재고보에 입학하였다.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1926년 3월 삼척군 대평리 소재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8년에는 삼척군 정하리에 위치한 생선기름을 만드는 온유(鰮油)공장에서 일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삼척보통학교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27년 경에는 정건화(鄭健和)가 조직한 삼척청년동맹에서 활동하였다. 1933년에는 심부윤(沈富潤) 등과 함께 삼척농민조합(三陟農民組合)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31년 5월 코민테른 12월테제의 영향으로 신간회(新幹會) 삼척지회와 삼척청년동맹이 해소되었다. 그러자 삼척청년동맹의 집행위원이자 삼척지역의 운동을 주도해 왔던 심부윤·정건화·황운대(黃雲大) 등은 원산(元山) 출신 활동가인 김덕환(金德煥)과 비밀결사 ‘K회’를 조직하여 혁명적농민조합 운동을 이끌고자 하였다. 그러나 근덕면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심부윤이 검거되고 김덕환이 피신하게 되면서 K회는 와해되었다. 이후 삼척지역에서의 사회운동 역시 중단되었으나, 1933년 3월 심부윤이 출옥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같은 해 4월 12일 변소봉(卞小鳳) 등과 함께 심부윤을 만난 자리에서 심부윤은 삼척군 내에서 “합법적으로는 소비조합이되, 이면은 적색노동조합”인 단체를 조직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농민조합을 표면적으로나마 합법화하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을 듣고 비합법운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에 1933년 7월 24일 정오 심부윤·변소봉·박래빈(朴來賓)·이상인(李尙寅) 등 4명과 함께 삼척군 삼척면(三陟面) 오분리(梧粉里) 해안에 모여 삼척노농공작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삼척노농공작위원회는 북삼면(北三面)·근덕면(近德面)·삼척면 3개의 면(面) 단위로 나뉘고, 그 밑에 농민부·노동부·운수부·온유비부(鰮油肥部) 등 지역 실정에 맞는 조직체계를 두었다. 이때 삼척면 총괄 책임자이자 삼척면 운수부 책임을 맡았다. 또한 변소봉과 함께 정라항(汀羅港, 현 삼척항)에서 총파업을 주도하며 더 많은 동지를 규합하는 임무를 받았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34년 5월 20일 삼척적색농민조합에 관여한 청년 10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1935년 10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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