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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옥

鄭明玉

189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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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명옥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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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沃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옥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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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창의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창의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이남면(伊南面, 현 이원면) 이원리(伊院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7년 당시 나이가 30세이므로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6년 1월 조선총독부 신청사(新廳舍), 경성부청(京城府廳), 조선은행(朝鮮銀行), 종로경찰서(鐘路警察署), 조선신궁(朝鮮神宮) 등과 같은 서울 시내의 주요 관공서와 건물 등에 폭탄 투척을 계획하였던 창의단(倡義團)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창의단은 의병활동을 기반으로 한 단체로 만주에서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창의군단(倡義軍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창의단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단체는 결사대(決死隊), 재정부(財政部), 교통부(交通部) 등으로 구성되었다. 의병 출신 김응선(金應先)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만주로 가 창의단원 계의산(桂義山)을 만나게 되었다. 계의산과 함께 동지들을 규합해 주요 관공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포고문을 배포하기로 결의한 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 1925년 말경부터 옥천군 옥천면 삼양리(三陽里) 배석규(裵錫圭)의 집, 전북 금산군((錦山郡), 충남 금산) 군북면(郡北面) 상곡리(上谷里) 이견국(李堅國)의 집에서 클로로포름·다이너마이트 등과 같은 재료를 모아 폭탄 6개를 제조하였다. 그리고 이 가운데 1개를 시험용으로 사용하였고, 나머지 5개는 서울로 운반하였다. 이러한 김응선의 권유로 1926년 1월 28일 김운용(金云用)·송암우(宋岩于)·정석조(鄭石祚) 등과 함께 옥천 이원역(伊院驛)을 출발해 서울 용산역에서 계의산을 만났다. 김응선은 자신을 비롯한 계의산 등과 함께 다음날 1월 29일 서울 시내의 주요 관공서 등을 둘러보았으며, 1월 30일에는 광화문 소재 중국 요리집 광흥원에 일행을 초대하여 미리 준비해 두었던 폭탄을 보여주며 창의단을 소개하였다. 창의단이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며 이의 선전을 위해 서울 시내 각처에 폭탄을 투하하고 독립사상을 담은 포고문을 살포할 예정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 창의단 가입과 활동에 동참할 것을 권고받자 바로 가입을 결정하였다. 또한 그 자리에서 자신이 조선총독부 신청사 폭파를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함께 자리했던 김운용은 경성부청 신청사, 김응선은 조선은행, 송암우는 종로경찰서, 계의산은 조선신궁을 각각 맡기로 하고, 다음 날 1월 31일 거사를 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계의산으로부터 폭탄 제조와 투척, 포고문 살포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난 뒤 일행과 함께 폭탄 5개와 포고문을 지닌 채 숙소인 청진동(淸進洞) 진일여관(進一旅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경기도 경찰부 소속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폭발물취체규칙(爆發物取締規則)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8년 11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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