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린
鄭道隣1900. 2. 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심회(一心會)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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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900년 2월 3일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 양촌동(場村洞)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정도인(鄭道仁)과 한지를 달리하는 정도린(鄭道燐)이다. 1920년 8월 미국의 의원단 일행이 서울(京城)에 온다는 것을 알고 원산부 내에서 한인 상가의 철시, 친일파 인민 살해, 일본상품 구입거절, 관공서 파괴 등 조선독립희망의 간절함을 표시한 독립문서의 인쇄와 산포에 가담하였다. 1920년 미국 대통령 윌슨(Thomas W. Wilson) 등에 의한 민족자결원칙에 기대를 여전히 품고 있었던 한국인들은 미국의 의원단 일행이 시찰을 온다는 소식은 외교론 방략 차원에서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함남 원산에서 미국 상하 양원 의원단 일행의 동양시찰 소식을 듣고, 독립을 목표로 삼던 『동아일보』 원산지국 통신원 김상익(金相翊)·이용훤(李容暄)·김장석(金章錫) 등이 독립운동 단체인 일심단(一心團)의 단원으로서 단장 김종한(金宗翰)·부단장 윤경수(尹景琇)를 비롯하여 이용호(李容昊)·최종현(崔鍾鉉)·최종빈(崔鍾濱)·장일연(張月淵)·이용구(李容九)·김연희(金演熙)·원기복(元己福)·조기천(趙基千)·김성준(全聖駿)·김봉순(金鳳洵) 등이 합심하였다. 함남 원산부에서 한국인 상가의 철시(撤市), 친일파 처단, 그 가옥의 소훼(燒燬), 일본 상품의 구입 거절, 관공서 파괴 등을 통해 한국 독립의 희망을 의원단 일행에게 알리고 독립운동을 발기하는 문서를 인쇄, 반포하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 파출소를 도괴하자”, “순사를 살해하고 일본인을 추방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남산교(南山橋)를 넘고 공립보통학교 앞을 지나 극장 동악좌(同樂座) 부근을 거쳐 북촌동(北村洞) 시장, 경찰관 파출소 방면 일대로 압도하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1920년 9월 23일 “김연희, 이용구, 조기천, 최종빈 등과 함께 남촌동의 목욕장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7명이 신도로 내려가 남산교를 건너 장춘교(長春橋) 부근에 이르렀는데, 최종빈, 김연희가 만세를 부르라고 말하여 대한독립만세를 한번 높이 부르고, 그 후 여러 번 만세를 불렀다. 장춘교 부근에서부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동악좌 부근에 갔을 때 약 20명에 달하여 동악좌 부근에 멈추어 만세를 불렀는데 모든 방향에서 군집한 자가 200~300여 명이 되었다. 조선독립을 희망하는 마음으로 만세를 불러서 소요가 일어나 동악좌 부근에서 그 일을 지휘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김종한 등 일심단원과 함께 소요죄로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20년 12월 22일 1심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 소요죄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1년 2월 23일 2심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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