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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진

田中鎭

1860. 5. 13 ~ 194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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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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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령(宜寧)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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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9) 1860년 5월 13일 경상북도 의령군(宜寧郡) 정곡면(正谷面) 죽전리(竹田里)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인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龍驤衛) 부사과(副司果)의 직첩을 받기도 하였으나 은거하여 나오지 않았다. 1914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저항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0년 일제는 조선총독부 설치와 더불어 일제의 토지 소유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임시토지조사국을 설치하고 전국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이 사업은 일제의 수탈 기반을 다지는 것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던 미간지를 무상으로 점유하여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개편했을 뿐 아니라 지세수입을 증대시켜 식민지 통치를 위한 조세수입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 각처에서 토지조사사업에 반대하는 투쟁들이 일어났는데, 주요 쟁점은 소유권 박탈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때에 의령군 정곡면에서도 분쟁이 일어났다. 정곡면 중교동 동쪽 일대는 죽전리·성황리·예동리·중교리 등의 주민들이 개간하여 수년 전부터 지세를 납부하고 있었던 민유지였다. 그런데 일제는 이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키고 임의로 조선농업주식회사에 대부하였다. 이후 1914년 8월경 조선총독부의 임시토지조사국원을 파견하여 이 일대의 토지를 측량하도록 하였다. 이때 측량을 하게 되면 토지가 조선농업주식회사(朝鮮農業株式會社) 관리로 이관되어 자연히 국유화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할 것이 명백하다고 예견하고, 남병우(南炳祐)·남상순(南相舜)·이진우(李震雨) 등과 함께 이를 극력 저지하기로 뜻을 모았다. 1914년 8월 26일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원의 측량을 방해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주민 700여 명과 함께 측량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조사원이 세운 푯말을 뽑아버리거나 조사원을 위력으로 제지하여 더 이상 측량을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그러나 다음 날인 27일에 토지조사원들이 경찰을 앞세우고 다시 토지 측량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에도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여 측량은 실패하였다. 이 일로 인해 1914년 8월 29일 남병우·이진우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5년 1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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