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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균

田鳳均

1891. 2. 7 ~ 194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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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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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構)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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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1891년 2월 7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構郡) 옥구면(沃構面) 오곡리(五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중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약 6년간 한문을 배웠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옥구면 면협의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경부터 흠치교의 일파인 동화교(東華敎)를 믿었고, 1940년 여름부터는 산본순문(山本淳文)과 교류하면서 강일순의 교리를 수용하였다. 1941년 5월 26일 전북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 지서리(知西里) 묵방곡(墨房谷)에서 개최된 증산교(甑山敎) 회합에 참여하고, “강증산(姜甑山)의 신도조리공사(神道調理公事)에 따라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이 대전은 곧 끝날 것인데 이것은 조선이 독립할 전조이며 조선은 독립하여 선진국이 된다”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강증산은 현세에 재림하여 천지인삼계(天地人三界)를 통리하는 삼황전하(三皇殿下)가 되며 조선은 독립하고, 세계의 선진국이 되며 우리의 신도들은 강증산의 수제자가 되어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에 걸쳐 육신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복록(福祿)을 얻어 세계인류를 지도할 자격을 부여받게 될 것이며,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 강력한 결사를 조직해야 한다”는 내용에 찬성하였다. 1941년경부터 종교 활동을 하면서 일제의 전쟁 상황에 대해 가늠해보기 시작하였고, 1942년 이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본격화하고 전쟁에서 패색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결사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교를 선택하고 증산도의 후천개벽 사상을 근거로 조선독립에 관한 예언을 널리 유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현재 세계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대전이 끝나면 교조 강증산이 재림하고 조선독립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등 독립의 열망을 나타내었다. 이처럼 증산교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44년 1월 10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38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전주교도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44년 7월 22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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