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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홍

全珪弘

1916 ~ 194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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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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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경성부 종로(鍾路) 창성동(昌城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45년 당시 나이가 26세로 기록되어 있어 1916년생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대한제국 육군 참령(參領) 출신인 조부 전면조(全冕朝)의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조부로부터 역사와 율곡(栗谷)·퇴계(退溪) 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당시 중화민국의 손문(孫文)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초석을 놓은 이븐 사우드(Ibn Saūd)의 전기를 읽고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33년 4월 경성제2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37년 3학년을 중퇴하였고, 1940년 경성공과학원 측량과에 입학해 1941년 3월 졸업하였다. 같은 해 삼릉조선광업소 조수보로 채용되었지만, 10월 그만두었다. 1942년 경성부 임시 고원(雇員)으로 들어가 같은 해 12월 동부 고원으로 임명되었고, 1943년 4월 1일 동대문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1944년 9월 상순경 동대문구(東大門區) 창신정(昌信町)에 거주하는 전 훈도(訓導) 오오시마(大島俊子)를 알게 된 후, 10월 15일경 서한을 건네면서 “조선인 청년이 일본군의 전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였다. 또한 10월 20일 오오시마에게 “조선 민족의 독립”을 바라는 내용의 서한과 ‘우감(偶感)’이라는 제목의 서한에서 “군대에 간 친구를 보내면서 슬퍼지면 타민족의 흥망에 조선의 청년이 끌려나가는 것이 불합리하며, 한 민족의 선조들이 낙랑시대와 고구려로부터 시작하여 유일하게 혼을 잃지 않고 살아왔으며 인도의 간디와 네루, 아라비아의 이븐 사우드, 터키의 케말파샤(Mustafa Kemal), 중국의 손문 등과 같은 지도자를 길러내어 일치단결하여 깨끗한 나라를 오랑캐로부터 빼앗아 와야 한다”라는 취지를 이야기하였다. 그해 10월 하순 경에는 종로구역소에 근무하는 카야마(香山重雄)에게 “일본이 사이판섬을 빼앗기고 동경도 때때로 공습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곧 패배할 것이며 전쟁 후에 미·영의 문화가 들어오고 일본이 패하면 조선이 독립할 것이며 그 지도자로서 여운형(呂運亨)이 가장 적임자다”라는 취지의 서한을 발송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1월 중순 무렵에도 오오시마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문장을 쓴 서한을 2차례에 걸쳐 보냈다. 또한 12월 9일 밤에는 “대동아전쟁이 4년째이니 전쟁이 끝날 것이며 미국, 영국의 문화가 들어오길 고대한다”고 하면서, 일본 제국의 패전과 서양의 지원에 의한 조선 독립을 희망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다가 1945년 6월 2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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