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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균

鄭南均

1905. 3. 5 ~ 195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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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정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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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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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성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5년 3월 5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약산면(藥山面) 장용리(藏龍里)에서 아버지 정재언(鄭在彦)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벽파(碧派)이다. 1927년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를 졸업하였다. 광주 지역에서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광주농업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11월 15명의 학생들과 함께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 성진회는 조국의 독립·사회과학 연구·식민지 노예교육 반대 등을 내걸고 만든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농업학교·광주지역 학생들의 항일결사 조직이었다. 성진회는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모임을 갖고 민족 교양 함양, 사회과학 학습을 통한 식민통치의 부당성 등에 대해 학습하기로 하고 비밀엄수, 회원 확대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7년 3월 회원 중 이탈자가 생기자 자택에서 성진회를 해체하기로 하였으나, 중심 인물들과 함께 학습을 지속해서 진행하기로 결의하였다. 1927년 광주농업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립 약산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모교의 독서회와 연계하여 학생들의 독립 의지 고취 등에 주력하였다. 1928년 3월경에는 「현재 조선과 총독부 경제책」이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발행된 일간신문과 동아일보를 인쇄하고 학생 등 10여 명에게 배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28년 12월 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벌금 20원, 환형유치일수 20일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9년 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기각되었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성진회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일제 경찰의 제지에도 곤봉을 휴대하고 광주 시내를 행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광주학생운동 직후 일제 경찰이 시위 참여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성진회 및 독서회 활동으로 붙잡혔다.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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