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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규

鄭斗奎

1898. 7. 8 ~ 195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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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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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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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2 경북중대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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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7월 8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초계면(草溪面) 원당동(元堂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922년부터 권총과 실탄을 숨겨두고 있으면서 동지들의 군자금 모집활동에 협력하였다. 1921년 2월경 둘째 형 정두희(鄭斗禧)의 권유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다고 한다. 1922년 3월경 정두희가 만주로 가면서 맡긴 권총 1정과 실탄 6발을 받아 본가의 땅을 파서 숨겨두었다. 같은 해 7월 정두희가 서울 체재 중에 사망하자 12월경 맏형 정두은(鄭斗殷)에게 권총 은닉 사실을 말하고 함께 녹 방지 작업을 한 후 계속 소지하였다. 1923년 8월 합천군 적중면(赤中面) 황정리(黃井里)에 사는 노기용(盧企容)이 같은 군 용만면(龍滿面)의 부호 문재규(文在奎)에게서 군자금을 거두려 할 때 그 권총을 위협용으로 쓰도록 내주었다. 1923년 4월부터 11월까지 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송두환(宋斗煥) 등이 벌인 군자금 모집 운동이 ‘제2경북중대사건’으로 일컬어지면서 일제 경찰에 발각된 후, 연루 혐의를 받았다. 그리하여 1923년 12월 10일 노원용(盧圓容)과 함께 경북경찰부 고등과 형사대에 붙잡혀 대구로 압송되었다. 조사 중 극심한 고문으로 몸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맏형 정두은이 조사 형사 3명을 폭행능학상해(暴行凌虐傷害) 혐의로 12월 28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고발하고 엄중 처벌을 요구하였다. 1924년 4월 예심 종결과 더불어 이른바 총포화약류 단속령 시행규칙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같은 해 11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미결구류 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붙잡힌 후 판결 선고 때까지 11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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