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영
張基永1904. 9. 1 ~ 1981. 5.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북미한인유학생총회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주미외교위원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태평양전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4년 9월 1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영월면(寧越面) 영흥리(永興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정(石正)이다. 영월읍 소재의 영월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춘천 농업학교 및 중동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주오대학(中央大學) 경제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에서 학업을 지속하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여권을 내주지 않는 등 일제의 방해가 뒤따라 잠시 귀국하였다. 1928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하면서 이승만(李承晩)과 서재필(徐載弼)의 거처에 출입하였다. 1930년 버클리에 있는 침례교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얼마 후에는 인디애나주립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에서 간행하는 월간잡지인 『한국학생회보(The Korean Student Bulletin)』를 편집하였고, 유학생총회의 기관지 『우라키(The Rocky)』에 미국 사회의 빈부문제를 기고하는 등 유학생사회의 언론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41년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를 계승한 임시정부의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가 워싱턴에 설치되자 그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2년까지 활동하며, 독립자금을 모금하고, 교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6월부터 1942년 5월까지 주미외교위원부로부터 받은 연간 봉급총액은 499원이었다. 1943년 봄 구미위원부는 태평양전쟁이 확대되자 한인을 이용한 특수전의 전개, 게릴라부대의 창설 필요성을 확인하고, 공동 작전을 위한 재미 한국청년들의 전투훈련과 참전을 미국 측에 제안하였다. 이승만의 추천에 따라 장석윤(張錫潤)·조종익(趙鍾翊)·피터 김 등과 함께 미네소타에 있는 미 국방부 전략정보국(OSS)에서 정보·통신 등 특수교육을 받았다. 이후 미군에 지원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동안 충칭(重慶)에 있는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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