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華淑
華淑1892. 2. 13 ~ 1979. 2.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한적십자회
- · 간호원양성소
- · 대한애국부인회
- · 상하이거류민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2년 2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정양필(鄭良弼)이고, 시아버지는 정순만(鄭淳萬)으로 모두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1914년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대한적십자회,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대비하여 상하이에서 열린 신한청년단(新韓靑年團) 회의에서 여운형(呂運亨)·김철(金澈)·김규식(金奎植) 등이 대표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때 사회 각계각층의 요인들과 독립운동 진행을 상의하기 위해 국내로 파견되는 인원으로 선정되었다. 1919년 7월 상하이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단체인 대한적십자회에서 상의원(常議員)으로 선출되었다. 대한적십자회는 1919년 7월 11·12·15일에 조직 총회를 열어 취지서를 발표하고, 규칙을 통과시켰으며 회장 이희경(李喜儆), 부회장 김성겸(金聖謙)을 비롯하여 이사·사검·상의원 등 임원을 뽑았다. 이후 대한적십자회 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1월 31일 대한적십자회에서 독립전쟁에 대비한 간호 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한 간호원양성소 제1기생으로 간호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1919년 9월 임시정부에서 헌법을 발포한 후 남녀평등권이 인정되어 여성인 김원경(金元慶)과 함께 임시정부 국무원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해 10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후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임시정부 재정 지원과 동포 구원 활동을 펼쳤다. 10월 31일 임시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대한민족대표 선언식에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이자 민족 대표 30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여 임시정부 명의로 일본 정부에 국내에서의 철수 퇴거를 요구하였다. 며칠 후에도 30인의 민족 대표로 임시정부 성립을 축하하는 축하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외곽후원단체인 상해거류민단(上海居留民團)의 상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난징(南京)에 있는 한인 유학생들과 교류하는 등 교육 활동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정양필과 결혼하였다. 정양필은 이승만(李承晩)·박용만(朴容萬) 등과 함께 재미동포의 독립사상 고취와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정순만의 아들이다. 결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출연하는 등 한국 독립을 위한 후원 활동을 지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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